숙희네 : Sookhee.net


 by Sookhee
2009. 5. 29. 14:51 Miscellaneous
'바보 놈현'을 보내는 글



수원서 1시간도 걸리지 않는 영결식을 인터넷 생중계로 - 그것도 잠깐 - 보았다.

봉하 마을은 내려가 볼 생각도 하지 못 했고, 심지어 수원 연화장에조차 발길을 들이지 못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노빠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노빠도 아니다.

선거때도, 재신임때도 노무현을 지지했지만 정작 노무현 정부의 무능함에 치를 떨었었다.

바보 노무현 책 같은 건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그가 했었다는 대부분의 연설, 정책 등도 최근에야 상세히 알았다.

그랬다. 나는 그냥 막연히 노무현이 좋은, 그냥 그런 사이비 노빠였다.




노무현은 대통령으로는 실격이었다.

그의 이상을 펼치기에 그의 정치력은 너무 부족했고, 일을 추진하기에 그의 수완의 폭은 너무 좁았으며, 때때로 현실에 영합과 현실의 직시를 구분하지 못한 대통령이었다.

지나친 자존심이 국익에 위배되기도 했으며, 솔직한 성격과 입담은 단어 하나의 해석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정치적 발언의 영향력을 악화시키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도 술자리에서 노무현 정부를 씹어댔으며, 지난 대선 때엔 후보에 따라 한나라당을 지지할 생각도 있었다.(결국 '피눈물'을 쏟으며 정동영에게 표를 행사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싫은 것과는 별개로 나는 노무현이 너무 좋았다.

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단상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에 열광했고, 대통령 못 해 먹겠다는 그의 말에 '그런 말 나올 법도 하지'라고 측은해 했으며,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말에 이르러서는 박수를 치며 좋아라 했었다.

그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라서조차 '인간 노무현' 그 자체였고, 그랬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실패한,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 아마 내가 죽기 전 까지 다시는 모실 수 없을 것만 같은 - 만화 주인공같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내가 진정한 노빠라고 스스로 여기게 된 것은 그의 퇴임 후 모습 때문인데, 그의 소위 '노간지' 스러운 모습이 나는 너무너무나 좋았다.

노무현 前 대통령.

그는 현실에서 있을 것 같지 않은, 그런데 정말로 존재했던 그런 대통령이었다.




세상은 영웅을 갈구한다.

영웅적인 행위에 대한 대리 만족, 그를 지지함으로써 생기는 간접적 성취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웅이 이루어내는 '정의는 승리한다'라는 공식의 확인이 우리에겐 너무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길이 빛날, 그러나 핸콕처럼 어딘가 일그러지고 완전하지 못 한 영웅이었다.

그의 당선 연설처럼 '권력에 맞서 권력을 쟁취하는 경험'을 그를 통해 체험할 수 있었고, 윗물도 맑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고이즈미든 부시든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 그에게 - 국익같은 어려운 건 차치하고 - 카타르시스를 느꼈고, 청와대에 손녀를 데리고 와 놀아주는 그에게서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로서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봉하 마을로 내려간 '노간지'를 보면서, 아.. 드디어 우리도 노후가 평안한 대통령을, 길 가다 만나면 스스럼없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할 수 있는 전직 대통령을 갖게 되나보다 하고 들떴었다.




그의 죽음에 값싼 음모론 같은 걸 덧칠하고 싶진 않다.

'자살'이라는 죽음 혹은 저항의 형태가 옳다 그르다 따지고 싶지도 않다.

그의 죽음 뒤에 일어날 진보라는 이름의 사분오열도, 그의 죽음을 쉽게 잊을 것만 같은 대한민국도 상상하기 싫다.




그런 건 잘 모르겠다.

그냥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덧칠된 오명과 지저분한 낙인이 잔뜩 찍힌채로 말이다.




그 사실만이 내게는 중요하고

그래서, 그를 마지막 보내는 오늘이 너무 슬프다.







-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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